국어교육과 염창권 교수 홈페이지 입니다.
http://202.31.152.13/myhome/yom
로그인 |  가입신청 | 
2019.7.18 (목) 프로필 공지사항 현대문학강독 대학원강의 갤러리 즐겨찾기

염창권

    갤러리

   2019. 07   
 
     


갤러리
제 목
 연시조 창작에서 행·연갈이의 실제와 그 평가
작성자
 yom
 조회 : 706
 작성일 : 2010/04/14 09:06
첨부파일1
  S5004554.JPG(2405kb)

사진: 염창권(일본국제미술관 "조각의 숲"에서)



연시조 창작에서 행·연갈이의 실제와 그 평가
                                                 염 창 권


1. 들어가며

문학 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금 여기의 지평에서 문학 현실을 바라보고 가능성과 전망을 밝혀보는 작업이 된다. 현대시조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현대시조 현상을 파악하는 일은 우리 시조시인들의 현실을 파악하는 일이 된다.
문학 관념은 동시대인들의 문학적 현상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문학의 향유층은 문학의 관습을 사용하고, 또 이 관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학의 관습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할지라도 당대의 문학적 관습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문학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문학 행위의 구체적인 실현은 주로 텍스트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문학적 구성물인 텍스트의 요소들은 - 형식, 주제, 존재 방식(서적이나 매체) 등 - 우리들의 인식의 범주 내에서 언급되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현대시조 100년 역사를 넘어선 지금, 현대시조의 현상을 토대로 텍스트성에 대한 점검과  전망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2. 시조에서 연(聯)의 형태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 의하면, 연시조(聯時調)는 두 개 이상의 평시조가 하나의 제목으로 엮어져 있는 시조의 한 형태로 정의되어 있다. 최초의 연시조인 맹사성의 <강호사시가>를 비롯하여 이황의 <도산십이곡>, 윤선도의 <오우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2009년도를 결산하는 문학상 특집(나래시조, 2009 겨울호)과 시조시인들이 선고한 2009년 좋은 시조(시조 21, 2010 봄호)를 읽어보았다. 이밖에도 2009년도 신춘문예당선자 특집(시조시학, 2009 봄호)이 있었는데, 이들은 앞의 기성시인들과 비교해서 약간의 차별성이 있다고 보았다. 심사위원이나 좋은 시조를 선한 사람들은 일단 현대시조에 정통한 원로나 중견 시조시인들이었다. 독서이론에 의하면 이들은 이상적 독자(ideal reader)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이상적 독자가 100% 현대시조 현상을 주도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조단의 현상에 대한 안목과 관습에 터를 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수작으로 선고한 시조 38편과 당선작 11편중에서 단시조(평시조)는 1편에 불과했고, 나머지 48편은 연시조였다.

      수(首)
  선정 1(단시조)2345 비고2009 문학상․5145․시조21 선정178․․계112225․<기타> 2009
신춘문예 당선작․․ (1)5(6)5(4)1(  ) 안은 신작    [표 1] 좋은 시조 선정 양상

위의 표를 보면,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기성시인의 것에 비해 길이가 길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신진으로서 의욕과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등단의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는 점에서 연시조 위주의 경향과 함께 수(首)가 많아지면서 실험적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는 하나의 경향성으로 판단하고, 앞의 두 잡지에서 소개한 기성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앞으로의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현대시조의 지향점과 상관없이, 기성 시조시인들의 경우 창작자와 평자들의 눈을 끄는 것은 세 수로 된 연시조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두 수로 이루어진 시조였다.
여기서 연(聯)의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연(聯, stanza)은 이태리어로 “房 또는 멈추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방이 하나하나 독립해 있으면서도 조합되어 한 채의 건물을 이루는 것과 같다. 시에서 연은 흔히 인쇄된 본문의 행간에 의해 구분되는 시행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문단이 부분집합이라면 한 편의 글은 전체집합이다. 이 때 시의 연은 텍스트의 문단과 같은 개념으로 전체 시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부분으로서 전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시조 창작에서 연(聯, stanza)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① 하나는 초․중․종장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한 수(首)의 완결된 상태로 한 개의 연은 시조 한 수와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경우이다. 즉, “1수 = 1연”의 의미로 우리가 흔히 연시조라고 할 때나 위 표에서와 같이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 ② 다른 하나는 자유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행과 행의 사이의 간격을 기준보다 넓혀서 의미를 구분하는 형식 문단에 의한 경계 구분이다. “1수 < 2연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행과 연 구분을 하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시조 문단에서 연시조라 함은, “1수(首) = 1연(聯)”의 개념으로 평시조나 사설시조 2수 이상이 하나의 제목 아래 연합하여 주제를 실현하는 경우를 말한다. 연시조(聯詩調)에서 연 개념이 중요한 까닭은, 한 편의 시조가 몇 수로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는 것이 전체 형식의 자장 내에서 의미 단위를 파악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3. 연시조에서 연의 배열(텍스트 구조)

가. 나열형 구조

처음에는 각 수가 하나의 독립된 자유시의 연 형태로 배열되면서 몇 수로 되어 있느냐가 몇 연인가를 구분하는 근거가 되었기에, 연시조에서 연은 자유시의 연 개념과 겹치면서 사용되었다. 김대행의 다음 언급은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분을 연행의 유무에서 찾아본 것으로, 고시조와 현대시조간의 변별점을 찾기 위한 전제 사항이 된다.  

고시조는 반드시 음악을 전제해야 했다는 점이 또 현대시조와 다르다. 시조라는 장르 이름부터가 그러하듯이 시조는 가곡창이 아니면 시조창으로 불리던 것이고, 따라서 시조를 지을 때는 음악적인 고려가 반드시 있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고시조는 노래 부르기에 좋은 시어를 써야 하는 제약이 있었지만 현대시조에는 그런 것이 없다.…… 가령 漢詩에는 그렇게나 많은 고향 그리움이나 나그네의 외로움 같은 것이 고시조에서는 보기 어려운 주제라는 사실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래서 현대시조와는 다르다. 노래로 불러야 한다는 전제와 노래하는 자리의 분위기나 형편들이 내용에서 個人性을 앗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시조의 공개성을 뜻하는데, 현대시조도 결국은 남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김대행, 1989, 273~274)

위의 논지를 전제로 한다면, 노랫가락에 실려진 가사의 역할을 하였던 고시조의 경우에는 노랫가락 자체가 시조의 연과 행 구분의 단위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현대적 표기에 의한 문자 텍스트로 변환될 때도 리듬(가락)이 행과 연 구분의 기준이 된 것이다.
연 배열에 있어서 나열형이라 함은 사물과 세계에 대하여 일정한 순서에 따라 연을 이루며 구성해 나가는 방법이다. 최초의 연시조로 알려져 있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는 “춘-하-추-동”의 순서로 나열되고 있으며,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윤선도의 <오우가>는 序詞(발)가 첫째 연으로 배치되어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 특색이다. 나머지 연은 이 서사를 뒷받침하여 순서대로 나열된다.

내 버디 몃치나하니 슈셕과 숑듁이라
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구룸빗치 조타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소래 맑다하나 그칠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뉘업기는 믈뿐인가 하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서 쉬이 디고
풀은 어이하야 프르난닷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아닐손 바회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늘
솔아, 너난 얻디 눈서리랄 모라난다
구천(九泉)의 불희 고단 줄을 글로하야 아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광명이 너만하니 또 잇나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윤선도 <五友歌> 전문

<五友歌>에서 序詞에 “水-石-松-竹-月”의 ‘다섯 벋’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순서를 바꾸게 되면 구전에 의한 기억이나 창사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고시조에서는 일의 순서나 시간, 계절의 순서, 근경 → 원경 등의 자연적 질서에 따라 서술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었을 것이다. 이를 거슬러서 서술하게 되면 기억이나 구연에 어려움이 따르고 질서를 강조했던 당대의 미학적 감수성에도 맞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열형의 서술은 가사문학에서 보여주는 예와 같이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되고 작품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읽기 위주로 향유되는 현대문학에 이르러서 가사문학이 그 효능을 잃게 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래하는 자리의 분위기나 형편들이 내용에서 個人性을 앗아”가지도 않았고, 향유층의 공동체적 관심사를 즉자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도 없는 현대시조에서는 이와 같은 나열형 구조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 병렬형(대비적 심화형) 구조

현대시조에서 율격적 자질은 율독의 경우에만 실현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시조의 감상은 정형률을 의식한 율독을 제외하면 자유시와 거의 다름없이 진행된다 하겠다. 즉, 자유시의 수용 방법에 정형률(외형률)을 고려한 율독을 추가하면 시조의 수용 범주가 되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아래 시조를 보자.

봄이면 꽃 피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겨울날 눈 내리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
네 마음의 소리 들린단다.
이정환 <친구야, 눈빛만 봐도> 전문

위의 시조는 한 수로 이루어진 단시조이지만, 의미의 단위를 양분함으로써 2연으로 배열되어 있고 의미의 가중치가 후반부로 몰려 있다.
그러면 이 시조는 일반 독자에게 어떻게 수용될 수 있겠는가?
우선적으로, 정형양식으로서 시조가 창작되고 수용되려면 시조의 소통 당사자들 사이에 시조의 관습과 형식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시조는 가창의 방식을 벗어났으므로 음보율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율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조에 대한 일차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시는 독자의 입장에서 시조양식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자유시로 읽게 되고, 그렇다고 해도 시를 읽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왜냐하면, 시조의 율격적 자질보다는 의미의 전개에 더 치중한 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종장의 제2구가 이 시의 중심 의미부인데 의미가 뒤쪽으로 몰리면서 음보가 길어져서 시조의 율격적 예기감을 무너뜨린다.
다음으로, 현대시조는 율격적 특성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초․중․종장의 상호 유기적 관련성을 활용한 시상의 전개 방식에서 시조의 관습과 형식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는 다음과 같은 의미 전개를 보인다.

봄 :   꽃 피는 소리      
                        〓      병렬    
겨울 :   눈 내리는 소리             ↓    

친구의 눈빛 : 네 마음의 소리      접속 종결    

이밖에도 다양한 양상의 시상전개가 가능하지만 정형시로서 시조가 자유시와 다른 점은 3장의 구조 내에서 상호간에 의미의 호응을 추구하면서 비교적 절제된 시어로 표현한다는 점일 것이다.
김대행은 3장 형식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로 의미호응 관계에 주목하면서, 일반적인 의미 전개를 ‘병렬→ 접속 종결’ 구조로 유형화시키고 나머지는 변이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였다.(김대행, 1984, 225~238 참조)
아래 시조는 1수 1연의 배열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형태의 연시조이다. 이 때 평시조 한  수는 자유시에서처럼 하나의 연이 된다. 그러나 자유시와 다른 점은 하나의 연으로 작동하는 한 수가 평시조에서와 다름없이 율격적, 의미적으로 자체 내에서 완결성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내 사랑 이런 방(房)이라면 좋겠다.
한지에 스미는 은은한 햇살 받아
밀화빛 곱게 익는 겨울
유자향 그윽한

내 사랑 이런 뜨락이면 좋겠다.
눈 덮여 눈에 갇혀 은백으로 잠든 새벽
발자국 누군가 하나
꼭 찍어 놓고 간
이지엽 <작은 사랑> 전문

위의 시조는 작은 사랑에 부여하는 의미를 두 개의 연으로 풀어서 쓰고 있는데, 두 개의 연이 서로 호응하면서도 각 연은 초․중․종장 간에 긴밀한 상호연관을 이루고 있다.

  소망     →  소망 실현의 전제  ⇨  실현의 모습 : 첫째 수, 둘째 수 병렬
기(초장)   →      승(중장)      ⇨   전․결(종장)

와 같은 의미 구조가 두 수를 통하여 연속되면서, 병렬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두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에서 자주 나타나는 바, 첫째 수는 장면이나 상황을 끌어내고 이어지는 둘째 수는 시적 화자의 처지나 주관이 대비적으로 제시되는 예가 많은데, 이는 “상황 제시 : 내적 심화”와 같이 두 수가 대비적으로 병렬되면서 주제를 심화시키는 경우이다.
다음 시조를 보자. 이 시조도 두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칼금 선명한
빈터의 의자 하나

잘 여며졌다 믿었던 상처의 장물들이

거 봐라
속수무책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내 몸의 바깥은 저리도 헐거워서
무심한 바람에도 쉽게 끈이 풀리고

누굴까
벼린 오기의 손톱을 세우는 자
손영희 <불룩한 의자> 전문

위의 시조는 “칼금 선명한/ 빈터의 의자”와 “내 몸의 바깥”이 병렬적으로 제시되면 실상은 두 세계가 한 몸임을 이야기한다. 화자의 시선이 머무는 “의자”는 “내 몸의 바깥”에 해당하는 보조관념이다. “헐거워서/ 무심한 바람에도 쉽게 끈이 풀리고” “오기의 손톱”에 칼금 긋듯 상처를 입는 나의 현재는 보조관념으로 제시된 “칼금 선명한/ 빈터의 의자”에 의해 객관화되는 바, 의자의 상처는 나의 상처와 대비되면서 나의 현재를 객관화하고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두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의 경우에는 단시조로 압축될 수 없는 상황과 관념이 대비적으로 병렬되면서 주제를 심화시키는 구조를 보인다.

다. 통합형 구조

통합형 구조라 함은, 각각의 수(首)가 전체성의 입장에서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의 의미연관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때 앞의 수와 뒤 따르는 수가 연속성을 갖게 되며, 내적으로는 각 수의 완결성 또한 추구하게 된다.

중년의 나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는

신갈나무 열매 하나 가만히 주워본다

화두란 바로 이런 것 쓸쓸한 화답 같은,

마른 꽃 흔들다가 혼자 가는 바람처럼

등 뒤로 들리는 가랑잎 밝는 소리

가벼운 이승의 한때, 문득 느낀 허기여
유재영 <쓸쓸한 화답> 전문

위의 시조에서 첫째 수는 “툭!”과 “쓸쓸한 화답”이 조응하면서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수는 “혼자 가는 바람”과 “문득 느낀 허기”가 조응하면서 첫째 수의 상황 제시에 대한 나름의 내적 추구가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즉, 각 수는 나름의 초․중․종장이 상응하면서 의미 단락을 완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의미 전개를 전체성의 범주로 확대해나가면, “중년의 나이 앞에 툭!”에서 발생한 사건은 가운데의 모색 과정을 통하여 “문득 느낀 허기여”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쓸쓸한 화답>은 한 장(章)을 하나의 연으로 독립시켜 수평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이와 같은 독법을 가능하게 한다.
통합형 구조는 대체로 세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고 본다. 즉, 첫째 수에서 상황이 발생하고, 둘째 수에서 내적 추구와 모색이 이루어진 다음, 셋째 수에서 글의 주제를 완결 짓는 의미 전개 방식이 그것이다. 이때, 세 수가 연결되는 방식은 내용 서사에 의존한다.

애벌레 뽕잎 먹고 비단실 뽑고 있다
이보다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으랴
한 마리 나비를 꿈꾸는 고치속의 꽃잠이여

철거덕 쇳소리로 빗장을 닫아걸고
덜미 잡힌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면
잠이 든 신화를 깨워 행간 속에 불러본다

풋내로 어지럽던 누에들의 네 벌 잠
하얗게 결이 삭아 매듭조차 지워지면
몸속에 갇힌 날개들의 결박을 풀고 있다.
                   전정희 <만년필> 전문

<만녈필>에서 시적 화자는 만년필에 잠재된 필기(표현)의 욕구를 누에의 네 벌 잠에 비유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실상 만년필로 대유된 욕망은 시인의 서사(narrative) 욕망과 다름이 없다. 전체적으로 시인은 필기 혹은 표출의 욕망을 만년필에 대유하는데서 출발하는데, 첫째 수에서는 만년필의 속성에서 이끌어낸 발상을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으랴/ 한 마리 나비를 꿈꾸는 고치속의 꽃잠”에 전가시킨다.  즉 “A : 만년필의 형상과 내재된 상태 = 고치 속의 꽃잠”과 같이 비유되고 있으나, “A”는 시인의 욕망이었던 원관념 “B”와의 관계에서 “A=B"와 같은 상태로 상위레벨에서 등가성을 실현한다. 즉 첫 수에서는 상황 설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전체 시의 의미연관 면에서 ‘전제(前提) 설정’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둘째 수에서는 “빗장을 닫아걸고”, “그리움”을 지나 “신화를 깨워 행간 속에 불러”보는 내적 추구의 과정을 거친다. 종결부인 셋째 수는 “네 벌 잠”을 거쳐 “몸속에 갇힌 날개들의 결박을 풀”게 되는 내용상의 마무리에 해당한다.
이 시조를 통합형으로 보는 이유는 시의 내용이 서사적으로 연결되면서 전체적으로 ‘상황(출발) → 진행 → 종결’과 같은 의미 전개를 보이기 때문이다.
‘[표 1] 좋은 시조 선정 양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가 가장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고 또한 평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 연유로는 단시조의 초․중․종장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출발) → 진행 → 접속․종결’과 같은 의미 전개 방식을, 세 수로 된 연시조에서 각 수들이 확대 생산하는 구조로 기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단해 본다.

4. 연시조에서 연과 행 배열(리듬, 의미, 이미지의 조합과 배열)

연과 행 배열에서 강조점을 어디에 두는가를 살피는 것도 현대시조를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현대시조는 문자 텍스트를 통한 소통이 중심이 되므로, 문자로 배열된 연과 행의 형태를 강조하게 된다.
연은 하나 또는 두 개 이상의 행이 모여서 이루어진 단락이다. 시의 행이 리듬, 의미, 이미지로 구성되므로, 당연히 연은 리듬, 의미, 이미지가 모여 이루는 단락이 된다. 따라서 연과 행의 배열에 있어서도 리듬, 의미, 이미지의 어느 부분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가 중요하게 된다.
이 중에서 리듬(가락)은 시조 고유의 율격적 자질에 의존한다. 리듬(가락)에 의존하는 연시조라면 당연히 초․중․종장의 3장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율격적 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각 장이 독립되기보다는 율격적으로 상호의존적이어야 한다. 앞의 나열형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질서 있게 연과 시행을 배열함으로써 조화로운 율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에즈라 파운드는 시의 유형을 음악시, 회화시, 논리시로 나누고 시의 창작 경향이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진행한다고 보았다. 우리 시조단도 리듬을 강조하는 음악시의 경향에 집중하지 않고 이미지와 의미를 강조하는 등의 다채로운 창작 방식을 추구하여 왔다.
아래 시조는 연과 행 배열에 있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경우이다.

뚝! 하고 부러지는 것이 어찌 너 하나뿐이리
살다보면 부러질 일 한두 번 아닌 것을

그 뭣도 힘으로 맞서면

부러져 무릎 꿇는다

누군가는 무딘 맘 잘 벼려 결대로 깎아
모두에게 희망 주는 불멸의 시를 쓰고

누구는 칼에 베인 채

큰 적의를 품는다

연필심이 다 닳도록 길 위에 쓴 낱말들
자간에 삶의 쉼표 문장부호 찍어 놓고

장자의 내편을 읽는다

내 안을 살피라는
오종문 <연필을 깎다> 전문

위의 시조는 2행으로 된 연과 1행 단독으로 된 연이 교차하면서, 각 수의 의미 단위를 확정하고 있다. 초․중장의 2행은 1연으로 되어 있고, 종장은 2개의 연으로 분할되어 있다. 즉, 각 수는 3개의 연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초․중장의 1개 연은 상황 서술이고 종장의 2개 연은 의미 선언의 형태를 띤다. 둘째 수는 상황이 병렬되지만 연과 행 배열에 의해 강조점이 종장에 놓여있으므로, 종장이 의미부로 작동하는 것은 동일하다.  
“뚝! 하고 부러지는 것”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하여 “내 안을 살피라는” 종결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러져 무릎 꿇는다”와 “큰 적의를 품는다”가 놓인다. 이와 같은 좌절과 상처는 연필심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은폐된 전력을 추론할 수 있는 것으로, 부러진 연필심이 상처받은 삶의 보조관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결말의 “장자의 내편을 읽는” 화자의 태도는 부러진 연필심에 대한  성찰이 다름 아닌 삶에 대한 성찰을 동반하는 문제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학적 용어로서 이미지는 대개 3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① 넓은 의미로 시나 그 밖의 문학 작품에서 축어적 묘사나 암시 또는 직유․은유에 사용되는 보조관념들로 언급된 감각적 지각의 모든 대상과 특성들을 의미 한다. ② 좁은 의미로 시각적 대상이나 장면의 묘사만을 의미한다. ③ 비유의 보조관념들을 의미한다.(Abrams; 오규원, 1991, 404)
이미지에 의한 연과 행 배열이란, 문자를 통해 이미지가 전달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 이미지와의 유기적 관련성 하에 연을 나누고 행을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아래 세 편의 시조는 감각적인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사용된 경우이다.


근육이 풀리듯 얼었던 길들 녹아
뚜욱 뚝 물 떨어지는 새벽의 하늘가에
아버지, 주름진 시간이
불그스름 흐른다.
이송희 <아버지의 겨울> 넷째 수

굴러라, 꽃봉오리들

담을 넘고
울을 넘어

공처럼 탱탱하게 저승까지 꽃 굴러가서

어머니, 혼자인 밥상에
겸상하듯
꽃 들어라
유종인 <水菊> 둘째 수

가을은 해년마다 돗바늘을 들고 와서

촘촘히 한 땀 한 땀 온 들녘을 누벼 간다

봇물이 위뜸 아래뜸 고요를 먹이고 있다

절인 고등어 같은 하오의 시간 끝에

하늘은 또 하늘대로 지에밥을 지어 놓고

수척한 콩밭 둔덕에 두레상을 놓는다
박기섭 <角北-가을 지에밥> 전문

위의 시조 ①, ②, ③은 모두 공감각적인 측면에서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①의 시조에서 행 배열은 전형적인 예인데, 종장의 의미부를 2행으로 배치함으로써 접속․종결의 의미부를 구분하여 독자에게 안내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대시조에 와서 전형화된 것으로 시조의 율격을 버리지 않으면서 종장의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얼었던 길들 녹”는 촉각적이며 근육감각적인 양상과 “뚜욱 뚝”, “흐른다”의 운동감각 그리고 “불그스름”의 시각적 양상이 공감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원관념인 아버지의 병든 몸속을 흐르는 혈액의 “주름진 시간”을 환기하는 바, 이들은 상호의존적인 상태로 연속될 수밖에 없다. 얼었다 풀리는 겨울 이미지와 아버지의 응고된 혈액의 풀림은 “초․중장 : 종장”의 은유적 관계를 실현하면서 1연 4행의 구성으로 완결된다.
②의 시조는 동적인 감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운동(근육) 감각도 하나의 이미지 창조의 방법인데, 이러한 동적인 감각은 공간이나 장소에 대한 시지각과 묘사를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굴러라, 꽃봉오리들// 담을 넘고/ 울을 넘어//”와 같이 연과 행갈이가 자주 진행되면서 의미상으로 공간적 이동의 경로와 깊이를 확보한다. 그만큼 “굴러라,”에서 시작하여 “꽃 들어라”에 이전되기까지는, 수국 꽃이 피는 이승에서 겸상하듯 꽃을 드는 저승의 공간까지 영역이 급속하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2음보 → 1음보의 역동적 가락에서 4음보의 완만한 지속감, 그리고 2음보 → 1음보와 같이 빠르고 동적인 가락에 의존하여 시상이 가볍고 경쾌하게 풀린다. 이는 저승에 계시는 어머니를 추모하는 행위가 하나도 슬프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이 시에서 어차피 이승에서 저승으로 꽃 굴러가듯 이행하는 일은 그다지 아프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가볍게 훌쩍 뛰어넘어 굴러갈 수 있는 세계가 저승이고 그곳에 어머니가 있거든 놀이하듯 수국 꽃송이를 따서 굴려 보내는 것이 어머니를 추모하는 이승의 일일뿐이므로.
③의 시조는 시각적 이미지와 운동감각이 중첩되어 있다. 이 시조의 율격적인 면은 “~ 와서, ~ 간다”나 “~ 먹이고 있다”, “ ~ 놓고, ~ 놓는다”와 같이 가을 풍경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들 자체가 율동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회화의 평면처럼 시행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을 풍경을 차례차례 조망하는 카메라의 시점이 이동하는 것처럼 각 행을 독립적인 연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 시조에서 ‘가을, 봇물, 하늘’은 자연적 상관물로서 여성적으로 인격화되어 있다. 가을은 들판을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누벼가고, 봇물은 “위뜸 아래뜸 고요를 먹이고 있”으며, 하늘은 지에밥 지어 “수척한 콩밭 둔덕에 두레상을 놓는다”고 한다. 가을 들판은 모성이 가진 양육성이 한층 강조되어 있고, 그 양육적 행위는 동적인 감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빈 들판을 남기는 제의적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 지에밥”을 건네는 하늘이 겨울의 시간까지 예비하는 까닭이다.
이상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세 편 시조를 통해 수(首) 단위의 결속성 내에서 행갈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세 편 모두 시조의 내용과 정서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시행을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5. 나오며

“연시조 창작에서 행·연갈이의 실제와 그 평가”라는 주제에 답하기 위해 지금까지 글을 이어 왔다. “실제”라는 용어가 문학현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현대시조의 현상으로부터 출발점을 잡고 연시조에 창작에 나타나는 연과 행갈이 양상을 살펴보았다.
정형시로서 시조의 기본은 초․중․종장의 3장이 연합된 수(首)가 갖는 형식률에 있다. 수(首) 단위의 결속성 내에서 연의 구분과 행갈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나 살펴본 대로, 율격이나 이미지가 이렇게 사용되었으므로 이렇게 연 구분과 행갈이를 해야 한다는 규칙은 지금의 시조 현상에서는 작동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전적인 말로 형식과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연 구분과 행갈이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논지는 우리 시조 현실에서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논의의 과정에서 필자가 의도적으로 유보한 사항이 있는데, “가치 평가”의 문제이다. 시조는 정형시이고, 정형시는 정해진 형식에 맞추어 쓰는 시의 일종이다. 살펴본 대로 시조의 형식에서 연과 행갈이에 대한 규칙은 없다. 그렇다면 정형양식을 공고히 하려면 연과 행갈이에 있어 현대시조에 맞게 다시 규칙을 세워야 하는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수(首)가 갖는 형식률의 범주를 깨지 않는 한, 수(首)의 형식적 결속성 내에서 자유를 가져도 좋다고 본다.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시조시인들이 그러하고 있으므로, 나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언급했던 “문학의 향유층은 문학의 관습을 사용하고, 또 이 관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는 전제를 다시 들추는 까닭이다.
민족문학의 원형적 양식으로서 시조문학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

<참고 문헌>
김대행(1984), 한국시가구조연구, 삼영사
김대행(1989), 우리시의 틀, 문학과비평사
염창권(1991), 이호우시조연구, 한국교원대 석사학위논문
염창권(1997), 이중의 소외구조 혹은 시조라는 항아리, 《열린시조》1997 가을호, 열린시조사
염창권(2004), 시조 텍스트의 수용과 창작 지도 방법, 《문학교육학》 제26호, 한국문학교육학회
오규원(1991),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원용문(1989), 윤선도문학연구, 국학자료원

이름:   비밀번호:
 


38
77
295,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