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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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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04   
 
       


갤러리
제 목
 강경호 시집 [휘파람부는 개]
작성자
 yom
 조회 : 617
 작성일 : 2010/04/14 09:09
첨부파일1
  IMG_5579.jpg(2518kb)

사진: 염창권(터키에서)


사물의 본성을 찾아가는 따뜻한 긍정의 힘
                    염창권(원탁시회, 2009. 11. 28. 왕자관)

강경호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 세계 속에서 주체와 객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따뜻한 긍정과 성찰의 힘을 보여준다.
시인의 생활 세계 속에서 어우러져 피붙이 살붙이로 살아가고 있는 대상은 아내,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 누님, 동생, 아이들이다. 특히 간절하게 눈길이 가는 것은 아버지나 돌아가신 누님, 그리고 남동생인데, 평소의 단정했던 모습은 영혼들의 상실이나 쇠잔과 함께 순간적으로 빛을 잃어버리거나 퇴색된 생활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래의 <어우러지다>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분별력이 떨어져 빨래한 옷을 뒤섞어놓음으로써 일어나는 일을 서술하고 있다.

이제 내 옷, 내 양말 챙겨 입기를 포기했다
속옷을 갈아입을라치면
내 것들은 아이들 서랍에 있고
아이들 것이 내 서랍에 있다
마른 빨래 담당하는 아버지 총기 흐려져
내 것 네 것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일생을 논밭에서 피와 잡초를 뽑으시던
아버지, 소일거리 하시던 밭 두어 마지기
이제 곡식과 잡초가 어우러져 한 세상인데

젊은 날 깔끔하고 셈이 분명했던
아버지, 이제 때없이 마음 가는대로
세상 눈치 보지 않고
경계란 경계를 허물어 간다

당신, 할멈 속옷도 입고
나와 아이들 속옷도 나눠 입다보니
온갖 것들이 섞여 자라는
산야의 초목이 된 듯하다.
<어우러지다> 전문

젊은 날 아버지는 총기가 있고 셈이 분명하고 사물을 잘 분별하고 매사에 절도가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정신력(영혼)이 쇠잔해지면서 사물들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마른 빨래를 개켜서 분배하는 일도 잘 못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와 같은 경계 허물기로 인해, 식구들은 섞여진 속옷들을 나눠 입다보니 “내 것 네 것”의 분별이 없어지게 되었다. 더구나 속옷을 나누어 입으며 좀 더 넉넉한 품이나 약간 좁혀지는 듯한 느낌은 원래 옷의 임자를 느껴보는 일이기에 오히려 피붙이간의 살가움을 보태는 역할을 한다. “당신, 할멈 속옷도 입고/ 나와 아이들 속옷도 나눠 입다보니/ 온갖 것들이 섞여 자라는/ 산야의 초목이 된 듯하다.”와 같이 경계를 허문 자리에서 자연의 섭리나, 있는 그대로 두어도(Let it be!)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순리 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시는 경계를 허물어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지 못함으로써 갖게 되는 자유나 해방감, 오히려 이를 통해 어우러지게 되는 세계에 대한 따뜻한 긍정의 힘을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분별력이 떨어진 행동에 대해서도 아들로서 따스한 긍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지나온 아버지의 생에 대한 이해와 보답의 마음이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또한 다른 식구들도 분별없이 옷을 나누어 입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길 수 있는 다정다감한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이다.

나무들이 그냥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열매가 익는 줄 알았습니다

새소리가
울음소리인지 노랫소리인지
알아보게 된
지천명에 이르렀을 때에야

나무들이 무슨 생각이 있어
잎을 틔우고
노란 색이건 붉은 색이건
꽃을 피워올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지를 동쪽으로건 서쪽으로건 뻗어
길을 내는 것도 알았습니다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도
알았습니다

봄날, 아무도 없는 땅 속에서
나무는 무슨 생각이 있어
손가락을 가리키며
우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생각> 전문

나이가 들어가면서 천명을 헤아리다 보면 존재의 축소를 가져올 법도 한데, 오히려 강 시인은 나뭇가지가 낸 길 혹은 새 소리를 통해서 허공에 놓인 길을 찾아나선다. 그 길을 향해 나뭇가지가 손가락처럼 가리키고 있다고 여기고, 그 가지 끝을 눈으로 좇아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터득한다. “가지를 동쪽으로건 서쪽으로건 뻗어/ 길을 내는 것도 알았습니다”라는 대목은, 사물인 나무의 성장과 가지 벋기가 결국 우주의 총체성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도 그 나무의 함께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현 존재로서의 각성을 보인다.
우주적인 기운 속에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고, “집 나간 개”나 “휘파람 부는 개”를 인정하고 추억하는 것은 그들이 우주적 본성 속에 유한한 생의 길을 함께 가는 동행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삶의 본성을 성찰하고 주변의 사물들에 대해 따뜻한 긍정의 시선을 보이는 이번 시집은  『휘파람 부는 개』라는 이상한 시집 표제에서 드러나고 있듯, 예사롭지 않은 사소한 일들 혹은 평범한 일상들 속에서 삶의 비의를 포착하는 일에 시인의 지향점이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 문법(Grammar)을 밝힌다면, 대상 세계가 타자로 경계 밖에서 머무르지 않고 주체와의 대비적 관계에서 출발하여 주체의 내면화를 이루고 종국에는 적극적으로 긍정되는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된다고 하겠다. 시집의 표사에 나오는, “엄격한 봉헌의례 그리고 경건성과 정직함”(김남조), “명상가로서의 시인”(오세영), “생명의 경건성에 대한 슬픔과 연민”(송수권)이나, 해설로 붙은 “겸손의 미덕과 경계를 허무는 삶”(이성혁) 등은 그의 시적 성취에 대한 논평들인데, 이들은 그의 시 문법(Grammar)에 내재된 세계관에 대한 가치평가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힌다.
시작의 방법 면이나 내용면을 아울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 세계가 시인 자신과 함께 연합하여 우주적 생의 고리를 순환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내적 성찰의 세계와 관조를 통한 외부 세계가 혼융되는 지점에서 시적 발상이 점화된다. 즉 “사물의 본성을 찾아가는 따뜻한 긍정의 힘”은 그의 시적 방법론이며 주제이자 세계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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